서른. 기다림과 함께한지 6년이 지났다.
앞에 5년은 그렇다고쳐도 지난 1년간은 만난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만난날 우리는 헤어졌다.
"실은 말야... 내가 하려던 말이란게... 우리 잠시 시간을 두고 떨어져있자."
그는 우유부단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너를 기다리게만한지 5년이 지났어. 하지만 이런 평행선이 언제까지 계속 될지모르겠어.
자신이 없어. 몇년이 더 걸릴지도. 하지만 오해하지 않았으면해.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자는게 아냐. 조금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줘.
정리가 끝날때까지, 그때까지 우리 만나지 않는걸로 하자."
"얼마나 걸리는데? 앞으로 3년후? 5년후? 아니면 10년?"
그는 말을 잇지 않았다.
29살이 되던해 발렌타인데이였다.
그리고 그 1년간 그에 대한 2개의 소식을 들었다.
하나는 이혼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꽤나 어린 아이와 사귀고 있다는 것.
"자네, 이거 복사 좀 부탁해"
5년간 항상같은 '부탁하는 얼굴'의 과장이 말했다.
"우와.. 이게다 복사야? 넌 항상 '네 네' 하고 받아주니까 그런거야"
5년간 항상 투정을 부리는 그녀가 말했다.
"늘 우리들, 여성들도 하나의 전력이다!라고 말하는 주제에..
전력이란게 고작 복사나 하는 거야? 그런 놈들한테는 의리 초코렛도 줄 필요없어."
"후후. 그래"
잊고 있었다. 오늘이 발렌타인데이라는 것.
그 사실이 생각났을때 그에대한 기억이 같이 떠올랐다.
3년전 발렌타인데이에는 그에게 소프트(중절모자)와 초코렛을 선물했다.
"반드시 데리러 올테니까." 하고 우유부단한 미소를 중절모자로 숨겼다.
"역시 빨라. 변함없구만. 그럼...어디보자. 15일까지의 세일즈 수치를 전부 뽑아줘"
그러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부드러운 미소가 드러났다.
"뭐? 벌써 된거야? 다음은 C상품 랭킹을 확인해서 올려줘."
그런그의 웃는 얼굴이 바람에 흩어져 버릴때까지 기다리진 않을생각이다.
이미 충분히 기다렸으니까.
[RRRRRR]
5년간 항상 그자리를 지켜오던 내선 1148번의 전화가 울렸다.
"네. 4과 입니다."
"나야"
그다.
"여기 창밖에 아래를 봐. 공중전화 박스에 있어. 알지?"
소프트를 흔들고 있는 그가 보였다.
"알고 있어."
목소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 기다리게 했지? 약속대로 마중나왔어. 널 데려갈꺼야."
그는 여느때보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는 함께야. 쭉 함께... 어디까지라도 말야."
너무 기다렸다.
"뭐하고 있어. 자 어서 나와."
"기다려. 아직 해야할일이 남았어. 그리고 퇴근은 5시야."
"잘 모르는 것 같네. 이제 더 해야할 일이란건 없어.
지금 네가 회사에 남아서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은
오른손에 쥔 펜을 책상위에 올려두고 의자를 넣고 걸어 나오는거야. 자, 어서"
소프트로 가리지 않은 그의 부드러운 미소가 보였다.
"이번 분기말 캠페인은 내근 여사원들에게 노동기준량을 할당하자...로 할까하는데"
"과장님 역시 굿 아이디어 입니다. 어쨌든 하나의 전력이니까요."
그는 길에 세워둔 차로 곤란해 할것이다.
이런저런 실랑이가 있을지도 모를테고
그렇게 기다리며 생각할 것이다.
"아직인가? 너무늦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15분쯤 기다리게해도 벌로는 아직 모자란게 아닌가 하고...
기다림의 끝에 나의 준비는 조금 길어질지도 모른다.